
서점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졌을까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서점에 다녀왔다. 사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2~3일 내로, 요즘은 당일 배송도 되는데 굳이 직접 가서 책을 골라보고 싶었다. 아마도 요즘 계속 모니터만 보고 지낸 탓인지 종이 냄새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도서구매 앱을 켜서 장바구니에 담아둔 것들을 보다가, 결국은 지금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집을 나섰다. 평소에 자주 가던 대형 서점이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데, 가면서도 ‘아, 그냥 인터넷으로 살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날씨도 습하고 걷는 게 생각보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큐레이션 코너에서 방황하던 시간
서점에 도착하니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요즘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봐도 딱히 끌리는 책이 없어서 한참을 서성였다. 특히 ‘청소년 추천 도서’나 ‘한글날 기념 북큐레이션’ 같은 코너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예전에 학교 수행평가나 과제로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도에 표류하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책들을 보면서 예전 기억도 나고,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옆에 있는 화려한 표지의 에세이들도 눈에 띄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손이 가지 않았다.
무직전생 만화책 앞에서 멈춰버린 나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을 사려고 들어갔는데, 엉뚱하게도 만화책 코너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예전에 친구가 빌려줬던 ‘무직전생’ 만화책이 진열되어 있는 걸 보고는 홀린 듯이 몇 권을 집어 들었다. 이게 원래 사려던 책의 3배가 넘는 가격이었는데, 당시에는 그게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내용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 권당 대략 6천 원에서 7천 원 사이였던 것 같은데, 합치니까 생각보다 꽤 큰 금액이 되어버렸다. 계산대에서 결제하면서 속으로 ‘내가 지금 대체 뭘 사고 있는 거지’ 싶었지만, 이미 손은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은 결국 두고 왔다
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어보니 내가 산 것들 중 절반이 충동적으로 고른 만화책이었다. 원래 사려고 했던 실용 서적이나 문학 책들은 만화책 가격 때문에 예산이 부족해서 결국 사지 못했다. 책 카페에서 추천받았던 다른 책들도 있었는데 다 잊어버렸다.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펼쳤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온라인 주문만 못 한 꼴이 된 것 같다. 그냥 애초에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만 딱 샀으면 훨씬 효율적이었을 텐데.
이 기분이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다
아직도 그날 사 온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다. 몇 장 읽다 말고 책장 구석에 던져둔 것들도 있다. 다음에는 정말 꼭 필요한 책 목록을 적어서 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 다음에 또 서점에 가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만 같다. 책을 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건지, 아니면 그냥 그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남들은 책을 사서 읽고 교양을 쌓는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매번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집에 돌아오는 건지. 확실히 다음번에는 좀 더 침착하게, 그리고 충동적인 소비는 조금 줄여보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