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금요일이었나, 오후에 시간이 좀 남아서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 들렀다. 사실 평소에 책을 아주 열심히 읽는 편은 아닌데, 요즘 들어 부쩍 집중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냥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도서관은 규모가 엄청 크진 않지만, 그래도 꽤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아이들 데려온 부모님들 말고도 가끔 혼자 와서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서가에는 이번 달 도서관에서 추천하는 도서들이 꽂혀 있었는데, ‘베스트셀러 순위’라고 적힌 팻말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나도 괜히 그 틈에 껴서 기웃거려 봤다. 예전에는 소설책을 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글자 읽는 게 업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것 같다.
도서관 서가에서 마주친 낯선 제목들
한참을 서성이다가 ‘의사 어벤저스’라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만 봐도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은 구성인데, 의외로 어른인 내가 봐도 꽤 흥미로워 보였다. 옆에 있던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엄청나게 집중해서 읽고 있길래 괜히 나도 한 권 꺼내서 펼쳐 봤다. 사실 어린이용 책이라 금방 읽겠지 싶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구성이 탄탄해서 놀랐다. 요즘 애들은 이런 걸 보는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어렵고 복잡한 자기계발서나 정보 전달용 책만 고집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옆 칸에 꽂혀 있던 서정홍 시인의 산문집도 눈에 들어왔다.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라는 제목이었는데, 도서관 조명이 밝아서인지 책 표지가 유독 차분해 보였다. 가격을 확인해 보니 대략 15,000원 정도 하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까 하다가, 그냥 왠지 이 책은 집 책장에 꽂아두고 가끔 꺼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점에 주문을 넣기로 했다.
책구매를 위한 고민과 귀찮음
도서관에서 나와서 핸드폰으로 바로 책을 검색해 봤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것저것 쿠폰을 적용하면 정가보다 10% 정도 싸게 살 수 있는데, 배송을 기다리는 게 또 일이다. 사실 어제 읽고 싶었는데 오늘 당장 없으면 또 마음이 식어버리는 게 문제다. 그래도 어쩌겠나, 동네 서점까지 걸어가기는 좀 멀고 결국엔 다시 앱을 켜서 결제 버튼을 눌렀다. 5세 동화책이랑 같이 묶어서 주문하면 배송비가 안 붙을 것 같아서 조카 선물로 줄 책도 몇 권 골랐다. 사실 5세 아이들 수준을 잘 몰라서 그냥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걸 대충 담았는데, 이게 나중에 제대로 된 선물인지 아니면 그냥 구색 맞추기용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주문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뿌듯함이 밀려왔다.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다 읽은 것 같은 이 기분, 독서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독서모임에 대한 막연한 생각
책을 기다리면서 도서관 게시판을 훑어봤다. ‘독서모임 모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걷기 동호회랑 비슷하게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모임이 되게 활기차 보이고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막상 참여하려고 하면 스케줄 맞추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주말엔 걷기 동호회 같은 활동도 좋지만, 가끔은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책장을 넘기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어쨌든 게시판을 찍어만 두고 연락은 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과 책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자신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모임에 나가면 뭔가 대단한 감상평을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기도 하고.
도서관에서의 시간이 남긴 것들
도서관을 나오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2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거창한 지식을 얻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스마트폰 알림 창만 들여다보던 평소보다는 훨씬 나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책을 구매해 둔 상태라 이제 택배가 오면 바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들뜨기도 한다. 물론, 막상 택배가 오면 포장도 안 뜯고 한참을 방치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꽤 많았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이 흐름이 나쁘지 않다. 다음번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와서 안 읽어본 분야의 소설책들도 뒤적여 봐야겠다. 도서관의 냄새가 옷에 배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