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쌓이는 책을 보며 그냥 구독을 시작해버렸다

집에 쌓이는 책을 보며 그냥 구독을 시작해버렸다

거실을 점령한 전집 상자들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은 큼지막한 전집 박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5세가 된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책을 꺼내 읽어달라고 조르는데, 매번 서점에 가서 새 책을 사다 나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중고 서점에서 옥스포드리딩트리 같은 교재를 좀 저렴하게 사보려 해도 상태가 영 마음에 걸리고, 그렇다고 새 전집을 들이자니 가격이 웬만한 학원비만큼 나와서 한숨만 나왔다. 특히 아이들이 금방 흥미를 잃고 구석에 박아두는 책들을 보면, 이게 교육인지 아니면 종이 쓰레기를 사는 건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주변 엄마들의 말만 듣고 무작정 책 구독 서비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낯선 서비스의 시작과 당혹감

처음엔 온라인으로 대여해 주는 도서관 서비스나 구독형 전자책 플랫폼을 기웃거렸다. 월 3만 원대부터 5만 원대까지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서비스들이 하도 많아서 뭘 골라야 할지 막막했는데, 마침 웅진씽크빅에서 나온 ‘책다른구독’ 같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박스로 배달해 주는 방식이라 전자책보다는 아이 손에 잡히는 실물 책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막상 신청하고 나니 책이 한 달에 한 번 현관 앞에 도착하는데, 처음 몇 번은 신나서 꺼내 보더니 이내 시큰둥해지는 모습에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대여 도서의 보관과 뒤처리 문제

구독 서비스의 가장 큰 적은 ‘관리’다. 아이가 책장을 넘기다 보면 모서리가 닳기도 하고, 어쩌다 음료수라도 튀기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대여 제품이라서 나중에 반납할 때 훼손된 부분을 일일이 체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 사버리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넘게 구독하다 보니 대여 책을 다시 돌려보내기 위해 박스 테이프를 붙이고, 아이가 숨겨둔 책 한 권을 찾느라 온 집안을 뒤지는 일이 매달 반복되었다. 이게 정말 편해지려고 시작한 일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일을 사서 만든 건지 가끔은 의문이 남는다.

책 읽어주기의 실체와 피로감

아이에게 매일 30분씩 책을 읽어주는 게 정석이라는데, 사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구독 서비스로 새로 배달된 책을 들고 오면 ‘오늘만은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무시할 수가 없다. 영어책 대여를 고민할 때도 비슷했다. 옥스포드리딩트리 같은 유명한 교재를 빌려주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냥 내 무릎 위에서 장난치다가 책 몇 페이지 넘기다 잠드는 게 전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

아직도 매달 구독료 결제 문자가 올 때면, 그냥 중고로 몇 권 사서 읽히고 끝내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낫지 않았을까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책이라는 게 빌려보는 맛도 있겠지만,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은 손때가 묻도록 곁에 두고 낡아질 때까지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다. 구독을 해지하자니 갑자기 책 읽어줄 거리가 없어질까 봐 불안하고, 그렇다고 계속하자니 관리하는 게 번거롭다. 오늘도 현관 앞에 놓인 묵직한 박스를 보며, 다음 달에는 정말 이 구독을 이어가야 할지 또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는 융합적 사고력이니 뭐니 하며 강조하지만, 사실 현실적인 고민은 오늘 당장 아이와 어떤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들 것인가 하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문제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