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덜컥 겁이 나서 시작한 심리검사

갑자기 덜컥 겁이 나서 시작한 심리검사

심리검사를 결제하면서 들었던 이상한 기분

며칠 전 새벽에 갑자기 무력증이 심하게 찾아왔다. 프리랜서로 지낸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게 맞는 방향인지 갑자기 확신이 안 섰다. 예전에 와디즈펀딩에서 봤던 심리검사 키트가 생각나서 무작정 결제했다. 가격은 대략 4만 원대였던 것 같은데, 사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심하면서도 그냥 돈을 써서라도 무언가 확인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늦은 밤에 결제 버튼을 누르는 내 손가락이 좀 떨렸던 것도 같다. 이게 상담을 받는 것도 아니고 고작 종이 몇 장 오는 키트인데 왜 이렇게 비싼가 싶기도 했지만, 일단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결과지를 받아 들고 느낀 허탈함과 묘한 안도감

며칠 뒤 우편함에 검사지가 도착했다. 방과후학교 강사로 일하는 친구가 나보고 이런 거 할 시간에 차라리 국민은행 채용 공고나 더 찾아보라고 핀잔을 주던 게 생각났다. 막상 결과지를 펴보니 그래프가 꽤 복잡했다. 예전에 발생학 공부할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이 다시 느껴졌다. 세포 분열 하나하나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나도 내 위치를 찾아가는 중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지는 게 문제다. 결과지에는 내가 ‘안정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건 그냥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 아닌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뻔한 문장 한 줄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진로를 고민하며 걷던 퇴근길의 붉은 노을

그날 오후 6시쯤이었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노을이 정말 붉었다. 갑자기 그날 본 운세에서 ‘붉은 노을’이 키워드였다는 게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괜히 의미 부여를 하게 됐다. 멘탈이 강해지는 법을 검색해보면 늘 나오는 게 ‘자신만의 속도를 가져라’ 같은 말들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실제로 당장 내일 들어올 수입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그런 조언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이직을 준비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하고, 막상 다른 직장에 들어가면 내가 또 이 프리랜서 생활을 그리워할 것 같기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어설픈 결심과 남겨진 불확실함

오늘도 노트북을 켜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화면만 멍하니 쳐다봤다. 사실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다투고 집을 나갔던 친구의 사연을 인터넷에서 봤는데,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길을 찾는 게 힘든 걸까. 경찰에 미리 연락해서 부모님과 중재를 요청했다는 그 사람의 절박함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도 누구에게든 내 상황을 설명하고 대신 좀 정리해달라고 하고 싶다. 심리검사 결과지에 적힌 문구 몇 개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벽들이 여전히 내 앞에 있다. 돈을 들여 결과를 확인했으니 이제 뭔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냥 이대로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나 싶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선택지에 대하여

내일은 다시 새로운 공고를 찾아볼까, 아니면 그냥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서 포트폴리오를 더 쌓을까. 선택지를 좁히는 게 좋다는 말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는 반대로 선택지를 더 넓히고 싶어 안달이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대박 기회가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미련 때문이겠지. 잠입 어드벤처 게임에서 목적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주인공처럼, 나도 지금 내 인생의 쿼터뷰 시점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그냥 내 일상인 건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계획 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댓글 2
  • 자꾸만 그래프를 보면서 세포 분열처럼 느린 속도에 답답함을 느끼는 게, 마치 잠입 어드벤처 게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주인공 같네요.

  • 운세에서 '붉은 노을'이 나왔다는 게 생각 나서,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걸 보니 좀 웃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