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노트북 켜는 게 왜 이렇게 매번 낯선지 모르겠다

퇴근하고 노트북 켜는 게 왜 이렇게 매번 낯선지 모르겠다

퇴근만 하면 이상하게 몸이 늘어진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아, 오늘은 진짜 뭐라도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결제를 해버리곤 한다. 그렇게 쌓인 온라인 강의 플랫폼만 벌써 3개다. 하나는 디자인 툴을 배우려고 했고, 하나는 영상 편집,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냥 막연하게 좋아 보였던 인문학 강의였다. 가격대는 보통 한 강의당 15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였던 것 같다. 비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막상 결제할 때는 ‘이 정도면 자기계발 투자치고는 저렴하지’라며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막상 집에서 맥주 한 캔 따고 노트북을 켜면, 강의 페이지를 띄우기까지가 왜 이렇게 멀고 험한지.

강의 페이지를 켜기 전의 긴장감과 피로감

거창한 결심을 하고 결제한 강의들은 의외로 한두 번 보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영상 편집 강의는 첫 강의부터 프로그램 설치를 하라고 나오는데, 버전이 안 맞아서 몇 시간을 씨름하다 지쳐버렸다. 분명 강의 속 강사는 쉽게 따라 하는 것 같은데, 내 화면에서는 계속 에러 메시지가 떴다. 대치동 유명 학원 강사들이 설계했다는 커리큘럼처럼 거창한 계획을 세워보려고 했지만, 막상 퇴근 후의 내 머릿속은 이미 텅 비어있다. 예전에 대치동 쪽 소수정예 학원 상담을 갔을 때 느꼈던 그 치열함과 내가 지금 거실에서 느끼는 나른함은 정말 다른 세상의 일 같다. 남들은 퇴근 후에도 2시간씩 꾸준히 한다는데, 나는 10분짜리 영상을 켜놓고도 자꾸 스마트폰으로 쇼츠를 넘기게 된다.

강의를 듣는 것과 공부하는 것의 괴리

공부법을 검색해보면 다들 ‘강의만 듣지 말고 직접 해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직접 해보려고 하면 답답함부터 밀려온다. 예전에 수학 기출 문제집을 풀 때 강의를 안 보고 풀려고 하면 막혀서 결국 강의를 틀게 되던 그 기분과 비슷하다. 강의를 틀어놓고 강사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내가 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강의를 끄고 혼자 화면을 마주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 그냥 ‘아, 내가 오늘 무언가를 하긴 했구나’라는 안도감 정도랄까. 이게 지식을 습득하는 건지, 아니면 불안감을 해소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건지 가끔은 헷갈린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계 예능 프로그램에서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가볍게 소비하는 수준에서 머무르는 느낌이다.

왜 항상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는 걸까

한 플랫폼은 결제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진도율이 15%에 멈춰 있다. 사이트에서는 계속해서 ‘강의를 이어 들으세요’라는 알람이 오는데, 그걸 볼 때마다 괜히 찔려서 사이트 접속을 더 안 하게 된다. 마치 방학 때 사놓고 3페이지까지만 푼 문제집을 보는 기분이랄까.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배우는 과정의 고통이나 귀찮음보다는, ‘배우기로 마음먹은 상태’가 주는 안정감을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문의 강의나 기업용 교육처럼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 의지로 시작하는 건데 왜 이렇게 항상 굴곡이 생기는 건지 답답할 때가 많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취미의 세계

이번 주말에는 꼭 영상 편집 강의의 2강을 듣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토요일이 되면 친구를 만나거나, 그냥 밀린 잠을 자는 쪽을 선택할 것 같다. 그래도 노트북 바탕화면에 강의 아이콘을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 듣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인지 아니면 버리기엔 아까운 돈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퇴근 후의 시간이 예전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완성해 나가는지, 아니면 다들 나처럼 조금씩 하다가 멈추고 다시 시작하고 그러는 건지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오늘도 결국 노트북은 덮어두고 그냥 넷플릭스를 켠다. 내일은 정말 다를까 싶지만, 아마 내일도 비슷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댓글 2
  • 영상 편집 강의, 처음부터 설치 때문에 바로 포기하게 되네요. 왠지 저도 그래요…

  • 영상 편집 강의, 버전 때문에 진짜 짜증 났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