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 센터 예약부터 쉽지 않았던 과정
아이 진로 문제로 여기저기 기웃거린 지가 벌써 몇 달째인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가정통신문이나 온라인 입시 사이트들은 너무 정보가 방대해서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러다 지역에 있는 진로상담센터에서 청소년 대상 심리검사와 상담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약을 시도했다. 가격은 대략 15만 원 정도였는데, 사설 컨설팅 업체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결제했다. 그런데 예약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상담사 선생님 한 분이 감당하는 인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주말이나 방과 후 시간은 이미 두 달 치가 마감된 상태였다. 겨우 시간을 내서 평일 오후에 반차를 쓰고 방문했는데, 그날따라 비가 와서 그런지 가는 길도 꽤 번거롭게 느껴졌다. 센터는 구립도서관 근처 건물에 있었는데, 주차 공간이 협소해서 결국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검사 결과지와 마주했던 당혹감
상담실에 들어가니 낯선 상담사분이 인자한 표정으로 맞이해주셨다. 아이는 들어가기 전부터 내심 긴장한 눈치였다. 미리 작성했던 검사지 결과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는데, 내용은 꽤 구체적이었다. 아이의 성격 유형이나 관심사, 그리고 직업 종류에 대한 선호도까지 나름 정교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고 논리적인 사고가 발달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게 아이가 평소 집에서 보여주던 모습과 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다. 상담사님은 과학전람회 같은 활동을 해보는 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권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집에서 게임할 때 외에는 딱히 무언가를 파고드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내가 그 결과를 보며 ‘정말 이 아이가 그런 쪽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담사님은 데이터 기반의 객관적인 지표라고 설명하셨지만, 부모로서 보는 우리 아이의 모습과 종이 위의 결과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간극이 분명 존재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며 느낀 현실적인 벽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생활기록부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은 학생부 기록이 중요하다 보니 다들 품질관련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따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상담사님도 그런 점을 의식한 듯, 요즘 입시 트렌드와 함께 학교에서 챙겨야 할 세부 특기사항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솔직히 듣는 내내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걸 다 챙기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도 확실하지 않은데, 어떤 활동을 골라야 생기부에 도움이 될지 전략을 짜는 과정이 마치 비즈니스 플랜을 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선생님들도 워낙 바쁘시니 이 정도로 깊이 있는 상담을 바라는 게 무리라는 걸 나도 잘 안다. 대입 전형이 복잡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전문가 앞에서 구체적인 숫자를 마주하니 막막함만 더 커졌다.
남겨진 과제와 해결되지 않은 의문
상담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어떤 것 같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냥 ‘잘 모르겠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1시간 남짓한 상담 시간 동안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상담사님은 꽤 꼼꼼하게 메모를 해가며 조언을 해주셨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작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었다. 상담은 정보 전달 위주였고, 아이의 내면적인 고민이나 진정한 열망 같은 부분은 그 짧은 시간 안에 끄집어내기엔 무리였던 것 같다. 비싼 비용을 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저렴한 것도 아닌 그 정도 금액을 썼지만, 얻은 결과물은 ‘다음에 다시 한번 와서 상담을 이어가자’는 기약 없는 약속뿐이었다. 상담 센터를 나서면서 느꼈던 그 묘한 허탈감은 단순히 시간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무언가 거창한 해결책을 바랐기 때문일까.
당분간은 그냥 지켜보기로
집에 돌아와 씻고 나와 거실에 앉아 있는데, 아이가 자기 방에서 문제집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상담에서 들었던 ‘자신만의 로드맵’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들 그렇게 아이의 미래를 설계해주고 길을 찾아준다는데, 우리는 그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억지로 과학 동아리를 시키거나 자격증 공부를 시키는 게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지금은 학교 공부나 충실히 하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진로 상담이라는 게 결국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다만, 오늘 상담으로 인해 얻은 불안함이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모든 것은 아이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