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적성검사만 열 번 넘게 해본 사람의 후기

공짜 적성검사만 열 번 넘게 해본 사람의 후기

어제 새벽에 갑자기 내 커리어가 너무 불안해서, 또 습관처럼 엠비티아이 무료검사 사이트에 들어갔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결과가 나오면 그대로 믿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클릭하는 일종의 의식이 된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나 비슷비슷한 결과가 나왔고, 나는 또 씁쓸하게 화면을 껐다. 사실 적성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숫자로 나오는 건 아닌데 말이다.

무료 인적성 검사가 주는 묘한 위안과 찝찝함

무료로 풀려있는 직업적성 테스트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그럴싸하다. 문항 몇 개 체크하고 나면 ‘당신은 분석적이고 창의적인 업무에 적합합니다’ 같은 결론이 나온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좀 나아지긴 한다. 얼마 전에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어떤 사이트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정밀 테스트(?)를 해봤는데, 결과값이 공기업 시험 일정 챙기면서 봤던 문제집 유형이랑 묘하게 겹쳐서 놀랐다. 그런데 막상 그걸 가지고 내 인생 방향을 정하려니, 경찰관이나 전문직 자격증 같은 거창한 단어들만 나열될 뿐 실제로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14,000원 정도를 내고 보는 유료 검사도 예전에 받아본 적이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무료 검사랑 별반 차이가 없어서 돈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홀랜드 검사와 현실의 간극

학교 다닐 때 해봤던 홀랜드 검사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분명 ‘예술형’이 높게 나왔는데, 현실은 마감 기한에 쫓겨서 엑셀 시트랑 씨름하는 게 일상이다. 그게 내 적성일 리가 없는데, 왜 나는 이걸 하고 있을까. 문득 예전에 봤던 뉴스 기사 중에 인천에서 로봇 테스트베드 구축하면서 미래 진로를 설계해 준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시설에서는 자기 적성을 진짜로 체험해볼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 회사 다니는 직장인들이 평일에 짬 내서 그런 곳을 찾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주말에 가려고 하면 예약이 꽉 차 있거나 운영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만다.

역검 준비하며 든 생각

최근에 이직 준비하면서 이른바 ‘역검’이라 불리는 AI 역량 검사도 몇 번 봤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터를 보면서 혼자 상황극을 하고, 뇌 게임을 하는데 도대체 이게 내 업무 역량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화면 속의 나는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으니까. 항공 채용 준비하는 친구가 이게 필수라고 하던데, 기술 인재를 뽑는 방식이 점점 더 기계적인 틀 안에 갇히는 기분이다. 필기 전형 대신 실무 위주로 평가한다는 화이트해커 분야 이야기도 들었지만, 내가 가려는 분야는 아직도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적성과 생계 사이의 애매한 거리

결국 적성검사는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기보다는,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확인해보는 가벼운 점괘 같은 거 아닐까 싶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고 안주하고 싶을 때 적성 테스트 결과지를 한 번 훑어보면 묘하게 자기 합리화가 된다. 하지만 막상 내일 출근해서 해야 할 업무를 생각하면 결과지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어제 새벽에 본 결과지도 사실 머릿속에서 거의 다 지워졌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간격은 오늘 점심 메뉴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어쩌면 답이 없는 게 당연한 건데, 자꾸만 테스트 결과 속에서 무언가 확실한 답을 찾으려고 하는 나 자신이 좀 웃기기도 하다. 오늘도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또 다른 심리 테스트를 찾아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 3
  • 인천 로봇 테스트베드 이야기,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비슷한 꿈을 꿔봤는데,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커서 결국 잊어버린 경험이 많아요.

  • 역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혼자서 답답한 상황극을 하는 모습이, 실제 업무의 어려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죠.

  • 인천 로봇 테스트베드 이야기, 정말 공감되네요. 제가 옮겨 다니는 회사가 워낙 융통성 없는 곳이라, 검사 결과랑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