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 다 한다는 자기개발 트렌드에 휩쓸려 무작정 결제부터 해버린 날
회사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뭔가 나만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주변 동료들은 퇴근하고 코딩을 배우네,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네 하면서 저마다 직무역량을 올리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급함에 덜컥 패스트캠퍼스에서 데이터 분석 관련 온라인 강의 패키지를 결제했다. 가격은 24만 원쯤 했던 것 같다. 책방에서 3만 원짜리 두꺼운 책을 사서 독학하는 것보다, 돈을 좀 쓰더라도 인강을 들으면 강제로라도 진도를 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퇴근 후의 내 체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결제 버튼을 누를 때만 해도 대단한 기획자가 될 것 같은 착각에 부풀어 있었다.
퇴근 후 한 시간 반씩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인강의 권장 학습량은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 분량이었다. 처음 사흘 동안은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나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면서부터 퇴근길 지하철에서부터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합정역 근처에 있는 집 근처 스타벅스에 노트북을 들고 가보기도 하고, 환경을 바꾸면 좀 나을까 싶어 독서실 독서대까지 알아봤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내 체력이었다. 하루 종일 사무실 모니터를 쳐다보며 진을 빼고 왔는데, 집이나 카페에 와서 다시 또 모니터를 보며 코드를 따라 적는 일은 영혼을 갈아 넣는 작업에 가까웠다. 머리에 들어오는 건 없고 강사의 목소리는 마치 백색소음처럼 귓가를 맴돌기만 했다.
이론과 실무의 괴리 그리고 강의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들
강의 속 강사는 아주 매끄럽게 데이터베이스를 다루고 오류 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내가 화면을 멈춰두고 직접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실행해 보면, 책이나 강의 화면에는 나오지 않는 낯선 에러 메시지가 툭툭 튀어 나왔다. 그 에러 하나를 해결하겠다고 구글에 검색하고 블로그를 뒤지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정작 배운 내용은 하나도 없고, 엉뚱한 설정 오류와 씨름하다가 밤 11시가 넘어가면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컴퓨터 학원을 직접 다니는 오프라인 강의라면 강사한테 바로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온라인은 질문 게시판에 글을 남겨도 답장이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에야 달려서 학습 맥이 툭툭 끊겼다.
환불 기한은 지나버렸고 아까운 수강료 때문에 억지로 켜두기만 했던 일주일
결국 2주 차가 지나면서부터는 강의 진도가 완전히 밀려버렸다. 환불을 하려고 규정을 알아보니 이미 전체 강의의 일정 퍼센트 이상을 조회했거나 구매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전액 환불은커녕 한 푼도 건지기 어려운 상태였다. 24만 원이라는 돈이 아까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그때부터는 일종의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 화면 한쪽에 인강을 재생만 시켜두고, 정작 내 시선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다른 짓을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수강률 그래프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기괴한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공부를 하려고 돈을 낸 건지, 수강 완료 게이지를 채우기 위해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밀려왔다.
완강이라는 목표를 내려놓고 필요한 챕터만 골라 보기 시작한 변화
결국 삼 주 차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완강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버렸다. 1강부터 순서대로 다 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당장 내 업무 기획서 작성에 참고할 수 있는 시각화 파트 세 챕터만 골려서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마스터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모든 강의를 다 이해할 필요도 없고, 강사가 말하는 모든 툴을 다 다룰 줄 몰라도 된다고 스스로 타협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듣다 보니 이전보다는 집중도가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진도는 듬성듬성 비어 있었고 비싼 돈을 주고 전체 패키지를 산 의미가 무색해졌다.
결국 남는 건 대단한 직무역량 향상보다 나한테 맞는 공부 방식을 알아낸 것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삼 주 동안 내 직무역량이 눈에 띄게 올랐는가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실무에서 쓰는 용어 몇 개를 더 알아듣게 되었고, 남들이 데이터 타령을 할 때 덜 쫄게 된 정도가 전부다. 여전히 내가 직접 복잡한 데이터를 추출해서 분석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다. 대신 내가 온라인 녹화 강의 스타일과는 지독하게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차라리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주말에 실시간으로 질답이 가능한 단기 워크숍을 가거나, 아예 얇은 실습 책 한 권을 끝까지 따라 해보는 게 내 성향에는 더 나았을 것 같다. 아직도 내 강의 보관함에는 채 보지 못한 70%의 영상들이 남아 있고, 로그인할 때마다 찜찜한 마음이 들지만 당분간은 다시 인강 결제를 하진 않을 것 같다.
저도 처음에는 전체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핵심만 선택해서 보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던 것 같아요.
데이터 분석하는 거 꽤 어렵다는 거, 확실히 느껴지네요. 특히 실시간 질의응답 워크숍이나 실습 책이 더 적합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