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나를 붙잡아두려는 건지 모르겠다

왜 굳이 나를 붙잡아두려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붙어있는 꼬리표

요즘 회사에서 나를 부르는 호칭이 좀 미묘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냥 마감 기한만 간신히 넘기는 외골수인데, 윗선에서는 자꾸 나를 일잘러라는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 ‘일잘러’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그 특유의 피로함이 있다. 엠로 같은 곳에서 주최하는 ‘2026 일잘러 페스타’ 같은 행사 이름만 봐도 어질어질하다. 대체 누가 누구를 규정짓는 건지. 나는 그저 내 할당량만 딱 끝내고 싶을 뿐인데, 자꾸 스마트워크 실현이니 AI 기반 업무 효율화니 하는 거창한 교육 프로그램을 들이민다. 경기도교육청율곡연수원에서 운영한다는 스마트 행정아카데미 내용까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분명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런 거 배워서 실무에 바로 적용하는 사람보다 그 교육 시간 내내 딴짓하다가 보고서 작성할 때만 챗GPT 붙잡고 씨름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강제되는 성장의 굴레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할 뿐이다. 그런데 인사팀에서는 자꾸 리더십 교육이다 뭐다 해서 나를 불러낸다. 아마도 우리 회사가 사람 구하기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라서 그런 것 같다. 소위 ‘똥차’가 나가야 ‘벤츠’가 들어온다는 내 지론은, 이 좁아터진 바닥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소리다. 그냥 나를 붙잡아두고 어떻게든 일을 시키려는 심산인 거지. 밖에서는 ‘프로 일잘러’ 소리 듣는 사람들이 서인국처럼 멋지게 1인 2역을 소화하며 넷플릭스 드라마를 찍는 동안, 나는 사무실 구석에서 모니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본다. 세상은 AI 대전환이라며 난리인데, 정작 내 업무 자동화는 여전히 엑셀 수식 하나 고치는 수준에서 멈춰 있다.

효율화라는 이름의 피로감

얼마 전에는 팀장이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한다며 강사 섭외 플랫폼을 뒤져보라고 시켰다. 시간당 20만 원에서 50만 원까지 부르는 강사들의 프로필을 쭉 훑어보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결국 돈은 돈대로 나가고, 남는 건 ‘워크숍 다녀왔습니다’라는 사진 한 장뿐인 것을. 사이트 제작 외주를 주는 것도 그렇다. 나한테 맡기면 며칠 밤새워서라도 뚝딱 만들 텐데, 굳이 외부 업체에 큰돈을 들이고 소통 비용까지 써가며 일을 키운다. 이게 다 조직문화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숨겨진 비효율이다. 내가 보기엔 그런 거 다 차치하고, 그냥 출퇴근 기록이나 정확히 찍히게 시스템 고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일 것 같은데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의 늪

가끔은 내가 정말로 일을 못 하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게 맞겠지. 그런데도 왜 자꾸 나를 붙잡는 걸까. 아마도 내가 사고를 쳐도 대충 수습은 한다는 그 미묘한 위치 때문인 것 같다. 일은 열심히 안 하는데 마감은 지키는, 참으로 애매한 포지션. 요즘은 정말 사표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깊다. 근데 또 막상 나가려니 밖이 더 추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눌러앉게 된다. 똥차를 몰고 다니면서 벤츠를 기다린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일도 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버겁다. 일잘러라는 단어가 이제는 거의 욕처럼 들릴 지경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딱히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거지. 지금 당장 교육 프로그램 몇 개 듣는다고 내 연봉이 드라마틱하게 오를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회사가 나를 해고할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이런 애매한 상태로 계속 흘러가겠지. 남들은 다들 무언가 거창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가끔 불안하지만, 뭐 어쩌겠나. 세상이 나보고 일잘러라며 부추겨도, 나는 여전히 내 속도대로 느릿느릿하게 살고 싶다. 어쩌면 그게 나만의 리더십일지도 모르겠다.

댓글 2
  • 엑셀 수식만 고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일은 좀 더 단순한 것 같아요.

  • 이런 저런 생각 정리하다가 보니, 마치 회사가 제가 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끈질기게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챗GPT를 활용해서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좋긴 한데, 훈련이 부족해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답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