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느꼈던 묘한 공허함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느꼈던 묘한 공허함

미술학과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때가 생각난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무언가 정해진 커리큘럼 안에서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당시에는 청강대 합격작이나 홍익대 미대 입시 관련 커뮤니티를 매일같이 들락거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나 우스운 일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포토샵 강의를 보며 펜 타블렛의 감각을 익히려고 애썼던 그 시간들이 기억난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인체 드로잉의 정석 같은 거창한 이론보다는, 당장 어떻게 하면 그럴듯한 컨셉 아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만 고민하게 되더라.

입시 미술과 대학 현장의 온도 차이

학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실기 비중이 90%니 80%니 하는 숫자에 목숨을 걸었다. 경희대 같은 곳은 실기력이 절대적이라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하니까, 하루에 8시간씩 같은 구도만 반복해서 그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그 훈련들이 내 창작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동아대 미술학과 교수님의 개인전이나, 요즘 학교에서 진행하는 융합 프로젝트 수업들을 보면,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어떻게 사고하는가’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근데 이건 입시 현장에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이다. 그냥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가 되는 게 목표였으니까.

멀티미디어학과와 순수미술의 경계에서

게임공학과나 멀티미디어학과로 진학한 친구들은 코딩과 디자인을 섞어서 결과물을 내놓는다. 가끔 그 친구들이 작업하는 걸 구경하면 나랑은 사용하는 뇌 회로 자체가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종이 위에 연필 자국을 남기는 게 편한데, 그들은 시스템 씽킹을 말하며 웹툰 작가나 영상 디렉터를 꿈꾼다. 한양YK인터칼리지 프로젝트 같은 결과물들을 보면 확실히 요즘 미술은 예전의 순수 미술과는 많이 다르다는 게 실감 난다. 자개나 과슈 같은 재료를 다루는 박사님들의 전시를 보러 갈 때도 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건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라니, 참 모순적이지 않나.

비용과 시간의 비효율성에 대하여

솔직히 말하면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비용이 꽤 만만치 않다. 월 수강료만 해도 적게는 6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가까이 나가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내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섞여 밤잠을 설치곤 했다. 그때 그 돈으로 차라리 해외 여행이라도 다녀왔으면 지금의 시야가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가끔 든다. 미술학과 재학 중인 지금도 전공 서적이며 재료비며 나가는 돈은 여전하다. 2022년에 열린 어떤 개인전을 보고 왔는데, 캔버스 한 점에 들어가는 재료 값만 생각해도 이게 과연 일반적인 자기계발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무엇을 위한 자기계발인가

요즘은 그냥 유튜브에서 인체 드로잉 팁을 찾아보거나, 컨셉 아트 포럼에서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구경하는 게 전부다. 사실 이것도 일종의 강박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혹은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 같은 것들 말이다. 곽동화 작가가 개인전 제목을 ‘이불안’이라고 지었던 게 기억나는데, 어쩌면 나도 그 불안을 해소하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지만, 솔직히 나는 내가 졸업 후에 정말 웹툰 작가가 될지, 아니면 그냥 디자인 관련 직종에서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지 전혀 확신이 없다. 그냥 오늘 내가 그린 선이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졌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그 정도로도 충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댓글 4
  • 해외여행 생각하는 것도 좋네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그때는 제가 그린 그림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게 목표였어요.

  • 해외여행 생각하시는 것처럼, 정말 시간 투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겠네요. 캔버스 재료비 생각하는 것도 맞지만, 결국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포토샵 강의만 하다가, 결국은 손끝의 감각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 포토샵 강의 보면서 펜 타블렛 익히려고 애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지금은 유튜브 팁 보는 게 전부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