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배우러 갔다가 괜히 짐만 늘리고 돌아온 날

악기 배우러 갔다가 괜히 짐만 늘리고 돌아온 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던 J음악학원 문턱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매일 똑같은 루틴의 반복이라 뭔가 새로운 걸 하나쯤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멍하니 유튜브 보는 시간 말고 좀 생산적인 거, 예전부터 피아노는 꼭 한번 다시 쳐보고 싶었으니까. 집 근처에 있는 J음악학원이 눈에 띄었다. 성인 취미반이 따로 있다고 해서 상담이나 받아볼까 하고 가봤는데, 상담비라고 할 건 없지만 수강료가 한 달에 15만 원에서 18만 원 선이었다. 3개월을 한꺼번에 끊으면 조금 할인해 준다는데 선뜻 지갑이 안 열렸다. 사실 악보를 아예 못 보는 건 아니지만, 바이엘 수준에서 멈춘 상태라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상담해주시는 분이 ‘다들 처음엔 똑같아요’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왜 이렇게 영혼 없어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뭐 하나 시작해 보자 싶어서 일단 한 달만 등록하고 나왔다.

악기보다 연습실 자리 잡기가 더 힘든 현실

문제는 수업 시간보다 연습실을 쓰는 거였다. 평일 저녁 7시쯤 퇴근해서 학원에 도착하면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다. 방음 부스가 몇 개 있긴 한데, 다들 퇴근하고 몰리는 시간이라 빈 곳을 찾는 게 눈치 게임이다. 한번은 연습실이 꽉 차서 복도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연습 좀 하려고 오는데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어버리니 점점 가기 싫어지는 거다. 원래는 집에서 가까운 게 장점이었는데, 막상 가보면 좁은 연습실에 박혀서 30분 치고 나오면 딱히 뭐 대단한 연습을 한 것 같지도 않고 손가락만 뻐근하다. 시설은 깔끔한데, 왠지 나만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성취감은 느끼는데 퇴근 후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래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한 곡씩 넘기다 보면 ‘완곡’이라는 걸 하긴 한다. 악보를 더듬더듬 읽다가 매끄럽게 연결되는 순간이 있긴 한데, 그 희열이 생각보다 짧다. 아니, 정확히는 곡을 끝내고 나면 그 이상의 감흥이 안 느껴진다. 내가 뭐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 다 하는 흔한 취미를 하나 더 만드는 기분이다. 수업료 17만 원을 내고 한 달 동안 4번 정도 레슨을 받는데, 막상 연습은 집에서 더 많이 할 줄 알았더니 피아노가 없으니까 학원 시간 아니면 손을 댈 수가 없다. 결국 학원에 묶여 있는 꼴이 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동호회처럼 서로 악보도 공유하고 그러던데, 나는 딱 30분 레슨 받고 조용히 집에 가는 게 최선이다.

남들은 즐겁다는데 나만 왜 이렇게 숙제 같을까

같이 배우는 사람들은 무슨 대단한 자기계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들 즐거워 보인다. 가끔 보면 강남이나 홍대 쪽에서 하는 취미반 대회 같은 거 나간다고 신나서 떠드는데, 나는 그런 거엔 딱히 관심이 안 간다. 그냥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는 건데, 가끔은 이것도 그냥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도 연습실 자리가 없어서 10분 기다리다가 그냥 집에 돌아왔다. 수강료는 이미 결제했는데 괜히 돈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안 가자니 그마저도 낭비인 것 같고. 이게 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하는 건지 가끔 회의감이 든다.

꾸준히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인 일상

사람들이 취미를 가지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저녁 시간이 더 쪼개지는 기분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원까지 걸어가는 그 15분도 가끔은 길게 느껴진다. 악기를 배우는 즐거움보다 ‘오늘도 출석했다’는 안도감이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다음 달 수강료를 또 내야 할지 말지 아직도 고민 중이다. 그냥 집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이나 크게 틀어놓는 게 더 나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당장 그만두기엔 해놓은 게 아까워서 일단 오늘까지만 연습하고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

댓글 1
  • 연습실 빈자리를 노리는 경쟁이 생각보다 치열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공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