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무언가 배우겠다는 마음이 자꾸 도망간다

요즘 들어 무언가 배우겠다는 마음이 자꾸 도망간다

강의 리스트만 잔뜩 쌓아두는 이상한 습관

며칠 전부터인가 갑자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출퇴근길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자꾸 김경일 교수님 강연 영상을 띄워줘서 그런가 보다. 뭐라도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당장 내일이라도 뭔가 근사한 지식을 습득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부랴부랴 이것저것 강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엑셀 실무 강의부터 시작해서 뜬금없이 화학1 개념 강좌까지. 책장에 꽂혀있는 매경테스트 책도 눈에 밟혀서 다시 꺼내 들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강의 결제만 해두고 막상 열어보지 않은 게 벌써 몇 개인지 모르겠다. 결제를 완료하는 그 순간에만 공부를 다 끝낸 것 같은 묘한 성취감이 들고, 정작 재생 버튼을 누르기가 이렇게 힘들다.

엑셀 강의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사실 업무 효율을 높이려면 엑셀을 제대로 하는 게 맞다. 유튜브에 엑셀 강의는 넘쳐난다. 10분 만에 마스터한다는 썸네일이 왜 그렇게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노트북을 켜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왠지 모르게 한숨부터 나온다. 함수 몇 개 외우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이렇게 미루는 걸까. 가격도 비싸지 않다.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면 꽤 괜찮은 강의를 살 수 있는데, 그 돈을 쓰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 내 의지가 3일을 못 가는 게 스스로도 조금 한심하게 느껴진다. 한 번은 큰맘 먹고 2시간짜리 실습 강의를 틀어놓고 따라 해 봤는데, 중간에 갑자기 카톡 메시지가 와서 확인하고, 그러다 딴짓하고, 결국 그대로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어제는 화가 나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고등학생 때도 안 하던 화학 공부를 고민하다

정말 이상한 건, 요즘 들어 뜬금없이 화학1 같은 과학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 때문에 억지로 외웠던 것들인데, 지금은 왜인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싶다는 거창한 이유가 붙는다. 생물학이나 신화학 같은 인문학적 소양도 챙기고 싶고, 무정부주의 같은 낯선 정치 철학 개념도 궁금하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할 시간에 당장 내일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 데이터 정리나 좀 하면 될 텐데. 내가 생각해도 좀 비효율적인 공부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가 현실 도피인지, 아니면 정말 지적 호기심이 생긴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보다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씁쓸한 지점이다.

강의를 듣는 것과 내 것이 되는 것의 차이

가끔은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연기하고 싶어서 강의를 고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매경테스트 책을 사서 펼쳐놓기만 해도 내가 경제를 공부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강의는 그냥 정보일 뿐이다. 내 뇌에 들어와서 제대로 박혀야 하는데, 자꾸 겉돌기만 한다. 강의를 듣는 시간을 쪼개는 것도 어렵다. 보통 퇴근하고 저녁 8시쯤에 자리에 앉는데, 씻고 밥 먹고 잠깐 쉬다 보면 벌써 10시가 넘는다. 여기서 강의를 듣겠다고 앉아있으면 다음 날 아침이 피곤하다. 주말은 또 주말대로 밀린 잠을 자느라 시간이 금방 간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내 주변엔 실제로 퇴근하고 나서 독서실을 가거나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도대체 어떤 동력으로 움직이는지 물어보고 싶다가도 말하게 된다.

다시 0으로 돌아가는 일상

결국 이번 주도 별다른 진전 없이 지나갔다. 결제해둔 경제 강의는 이제 ‘이어보기’ 목록에서 저 밑으로 밀려났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강의를 다 듣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강의를 듣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무언가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일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내가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또 마음이 동하면 다른 강의를 찾게 되겠지. 이번에는 그냥 좀 쉬고 싶다. 무언가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만이라도 멀어지고 싶다. 그래도 내일 출근해서 엑셀 파일을 열면, 또 멍하니 함수나 찾아보고 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댓글 1
  • 엑셀 강의가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그런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걸 포기하게 되네요.